제목: 그리스도인의 소원이 이와 같아야합니다
이름: 1남선교회


등록일: 2015-01-21 17:22
조회수: 431 / 추천수: 12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소망이나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소망과 소원은 때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희망을 품게 하고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큰 소원도 있고, 작은 소박한 소원도 있습니다. 소원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한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보려는 애씀이 동물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기에 우리에게도 소원하는바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소원과 그리스도인의 소원은 달라야합니다. 사도 바울의 소원과 같아야합니다. 내가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은, 내가 어떤 일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항상 그랬듯이 지금도 담대하게 원하는 것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위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빌립보서 1장 20절>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살든지 죽든지 몸을 드려 그리스도가 위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위대하게 되시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최고의 믿음은 순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그 뜻대로 살아 그리스도가 위대하게 되시는 것이 최고의 소망이 되고 그 소원을 이루며 사는 신앙이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왔던 시간은 이미 지난 시간으로 족하다고 베드로사도는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각 사람에게 남은 인생의 시간을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는 소망을 품고 어떤 일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실을 하나님 원하시는 방향으로 맞춰가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것은 오래되면 부패되기 쉽습니다. 믿음도 연륜이 쌓일수록 부패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래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오래된 것 중에도 부패된 것이 있고 발효된 것이 있습니다. 부패와 발효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결과는 다릅니다. 하나는 버려야 할 것이고, 하나는 숙성될수록 가치가 더 높아집니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 내가 원하는 일만 고집하고 완고한 정신이 들어가 하나님의 뜻이라 할지라도 따르지 못하게 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패되어 가는지 발효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주시기 바랍니다.

안데르센 동화 가운데 완두콩 다섯 형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른 콩밭, 어느 꼬투리 안에 완두콩 다섯 형제가 있었습니다. 완두콩들은 낮이면 햇빛을 받고, 밤이면 달빛을 받으며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콩이 다 익어 껍질이 벌어질 날만 기다리던 다섯은 세상에 나가면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서로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이 다가왔을 때 꼬투리가 딱 하고 벌어졌습니다. 다섯 개의 콩은 소년의 손에 잡혔습니다. 소년은 자기가 가진 새총에 완두콩을 넣고 하나씩 쏘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첫째가 날아가며 말했습니다. “야, 나는 이제 자유다. 넓은 들판으로 날아가 내 꿈을 펼칠 거야.”둘째가 소년의 손에 잡혔습니다. 둘째도 “나는 저 따뜻한 해님의 나라로 갈 거야” 하며 힘 있게 날아갔습니다.“나는 시원한 그늘에서 마음껏 낮잠을 즐길 거야.”셋째, 넷째도 각자가 소원했던 곳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마지막 다섯째 완두콩 차례가 되었습니다. 막내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저는 어느 곳에 가든지 상관없으니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게 하소서.”

막내가 날아가 떨어진 곳은 부드러운 흙과 이끼가 살포시 깔린, 어느 가난한 집의 창틀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어린 소녀와 엄마가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중병에 걸려 병석에 누워있고 엄마는 딸을 병구완하기 위해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녀가 창가를 보니 작은 새싹 하나가 나 있었습니다. 엄마가 일터에 나가서 낮에는 종일 혼자서 병석에 누워있어야 했던 소녀는 자기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파란 싹이 돋아난 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이후로 날마다 커가는 완두콩 싹을 바라보는 것이 소녀와 엄마에게 큰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완두콩을 친구 삼아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완두콩 넝쿨을 바라보면서, 소녀는 ‘나도 저 완두콩처럼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야겠다.’는 삶의 희망과 의욕을 가지게 되었고 병도 차츰 완쾌되어 갔습니다.

네 개의 완두콩은 각자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하려 했지만 막내 완두콩은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랬을 때 막내는 가난하고 어려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소녀에게 큰 힘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소원이 이와 같아야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기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때, 삶이 더욱 가치 있고 보람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나아가기를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 필요로 하는 곳으로 보내주셔서 모든 생활모습과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에게 크나큰 용기와 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막내 완두콩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나 자신의 신앙이 과연 올바르게 자라가고 있는지 확인해봅시다. 예전에는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는데 어느덧 ‘나도 알 만큼 안다’는 생각이 도리어 우리의 신앙을 좀먹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입니다.

내가 원하는 곳,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생각과 내 주장, 이런 완고한 마음을 떠나 보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우리가 그 일을 즐겨 순종하고 진행할 때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그 믿음을 가지고 따라오라고 하십니다.(복음나팔)


♬ 주의 손과 발이 되어 ♬




-추천하기     -목록보기  
의견(코멘트)을 작성하실 수 없습니다. 이유: 권한이 없는 회원레벨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DQ'Style